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곧 결혼을 했다. 부모님과 함께 살고자 했으나 집도 낡았고 또 신혼 때는 부부만의 오붓한 삶이 중요하니 따로 살라는 부모님의 권고에 따라 3년을 셋집에서 살았다.

그러다 부모님이 사시던 집을 헐고 2층 집을 지어서 1층엔 우리 부부와 애들이 2층엔 부모님이 사셨다. 애들이 자라서 집을 떠나고 아버지께서 먼저 떠나시고 작년 아카시아가 만발한 때에 어머니마저 이승을 떠나셨다. 올해 아내가 집 수리를 결심하고 업자와 상의하여 1층 3개의 방을 2개로 줄이고 2층과 마당 등을 전부 리모델링하였다. 27년 전 부모님이 우리 부부와 함께 살기 위해 지었던 집을 내 나이가 집 지을 때의 부모님 나이 즈음된 때에 리모델링하였다.

처음 집을 지었을 때 작은 처남이 큼직한 동양화를 선물하여 거실에 걸었다. 그 뒤 고교 대 선배님이신 김종욱선생님께서 용그림을 선물로 주시어 자랑스럽게 걸었다. 비싼 그림이라 자랑삼아 자식들에게 잘 관리하라고 늘 일러오던 작품이다. 그러나 집 수리를 마치고 아내는 그 그림 거는 것을 반대하였다. 산듯한 집에 오래토록 보아왔던 그림, 검은 먹물의 인상이 강한 그림이 집의 분위기와 너무 맞지 않다는 것이었다.

부득이 새로 그림을 하나 사려고 마음먹고 여기저기 사이트를 두루 검색해 보았다. 모네, 고흐, 세잔, 피카소 등등의 작품을 실컷 보았다. 그러다가 이안아트에서 이승희님의 그림을 만났다. 내 눈에 쏙 들어왔다. 특히 '만발한 꽃'은 정말 내 가슴 속까지 파고들어 왔다. 주저하지 않고 구매했다.

오늘 늦은 저녁에 그림이 도착했다. 아내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만발한 꽃보다 더 환하게 웃는다. 정말 좋다며 빨리 걸자고 한다. 밤중에 그림을 걸어놓으니 더욱 좋다.

연두색 바탕에 가녀린 꽃대에 활짝 핀 몇 송이의 꽃과 며칠 뒤면 필 듯한 몇 개의 꽃봉우리. 화폭 가득 차지 않은 꽃은 여백의 아름다움이 느껴지고, 여유롭다고 느끼는 어느 지점에 가녀린 꽃대가 서 있는 모습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딱 알맞은 만큼의 조화로움이 느껴진다. 홀로 서 있는 꽃대에는 누구나 감당해야만 하는 삶의 힘겨움이 담겨있고, 그 힘겨움을 이겨낸 사람만이 이룰 수 있는 삶의 아름다움이 꽃송이로 피어난 듯하다. 누구나 홀로 감당해야 할 삶이 있다면 누구도 혼자만이 살아가지 않듯 가녀린 꽃대 옆엔 또 다른 꽃대가 서 있다. 이웃과 친구를 곁에 두고 살지만 자신의 길을 걸어가야 하고, 나의 길을 걸어가지만 이웃과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게 삶이라면 이승희 님의 '반발한 꽃'은 딱 우리 인생의 길을 보여주는 작품인 듯하다.

나는 그림을 정말 잘 모르는 사람이다. 그러나 '반발한 꽃'이 아내의 얼굴에 만발한 웃음꽃을 피워주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